모래내시장

모래내시장 작가노트 하천에 모래가 쌓여 항상 물이 맑게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모래내’. 그 이름처럼 넉넉하게 흐르던 물길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66년 103개의 점포로 시작된 모래내시장은 그후 1973년 2월 113개 점포의 서중시장이 형성되며 두 시장이 합치면서 서울의 4대 시장으로 꼽히는 현 모래내시장의 규모로 확장되었다. 신촌과 아현, 연신내를 아우르며 서울 서북부의 경제를 지탱하던 거대한 동맥이었다. 한때 […]

독도와 함께 자고 거닐다

독도와 함께 자고 거닐다 작가노트 독도는 저에게 단순한 섬이 아닙니다. 2011년 5월, 우연한 인연에 이끌려 처음 마주했던 그날의 독도를 기억합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계획하고 들어간 그곳에서 독도는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풍랑 속에 갇혀 등대 아래 텐트를 치고 보낸 4박 5일의 시간. 식량이 떨어져 등대지기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저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땅의 […]

영해기점

영해기점 작가노트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섬 및 주변해역으로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가 명시하는 이 간결한 문장은 우리 삶의 터전이 단순한 육지를 넘어 저 멀리 외로운 섬과 바다의 연결체임을 선언합니다. 우리 바다 위에는 3,390개의 섬이 점처럼 흩어져 있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23개의 섬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영해 범위를 결정짓는 기준점이자, 주권의 시작점인 ‘영해기점’입니다.이 23개의 섬을 찾아 […]

세월호참사 그 후 10년

세월호참사 그 후 10년 작가노트 세월호참사11년 “잊지 않겠습니다, 안전한 사회“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마주했습니다. 그날 잃어버린 소중한 생명들,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아픔은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참사의 고통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2017년 세월호 본인양과 함께 시작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끝내 […]

사바이디, 신선(神仙)의 땅

사바이디, 신선(神仙)의 땅 작가노트 계획에 없던 발걸음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기록하던 중,‘삭’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라오스 방비엥. 그곳에서 마주한 첫 공기는 낯설고도 포근했습니다. 유료 화장실의 불편함과 낡은 푸세식 시설에 당황하기도 잠시, 나는 그곳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네 1970년대의 풍경을 보았습니다.검게 그을린 얼굴 위로 피어나던 아이들의 무해한 미소, 처음 본 이방인에게도 오래된 친구처럼 ‘사바이디’라고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 그들의 […]

물속에 잠든 삶, 물 위에 피어난 기록

물속에 잠든 삶, 물 위에 피어난 기록 작가노트 1985년 10월, 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를 가로막아 세운 길이 464m, 높이 97.5m의 충주댐이 완공되었다. 이 거대한 댐의 건설로 아름다운 내륙호수 충주호가 생겨나며 호반 관광지가 들어섰지만, 댐 아래로 많은 사람들의 삶과 기억, 전통, 그리고 터전이 물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2015년, 극심한 가뭄으로 충주댐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30여 년간 물에 […]

다시, 밤골에서

다시, 밤골에서 작가노트 서울 관악산 산자락 끝, 한때 밤나무가 무성했다던 그곳엔 ‘밤골’이라는 이름만이 박제된 채 남겨져 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아현동과 난곡동의 거센 개발 바람에 밀려 더 이상 갈 곳 없던 이들이 하나둘 모여 자리를 잡은 곳. 45년 전,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였던 이 가파른 산동네는 그렇게 118세대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나는 지난 16년 동안 이 […]

개망초의 꿈

개망초의 꿈 작가노트 이 작업은 나에게 단순히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부딪힌 어려움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무게를 함께 느끼고, 그 속에 숨겨진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2007년 어느 한적한 농촌에서 처음 만난 앗(45세)과 오잉(42세) 부부. 그들은 태국의 작은 도시에서부터 고향을 떠나 먼 이국땅 한국의 농촌으로 넘어왔다. 아무 연고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