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잠든 삶, 물 위에 피어난 기록

작가노트

1985년 10월, 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조동리를 가로막아 세운 길이 464m, 높이 97.5m의 충주댐이 완공되었다. 이 거대한 댐의 건설로 아름다운 내륙호수 충주호가 생겨나며 호반 관광지가 들어섰지만, 댐 아래로 많은 사람들의 삶과 기억, 전통, 그리고 터전이 물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2015년, 극심한 가뭄으로 충주댐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30여 년간 물에 잠겨 있던 마을의 자취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 아래에 묻혀 있던 집터의 돌무더기와 일부 훼손된 석관은 그때의 삶과 기억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이곳이 한때 평온하고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제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잊힌 고향이 되어버린 현실을 마주했다. 그 순간부터, 수몰된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해 그곳에서 ‘충주호 6형제’로 불리는 한 가족을 만났다. “사진을 찍으면 밥이 나와요, 돈이 나와요? 찬밥이라도 한술 뜨고 가요.”라고 말씀하셨던 고(故) 신수만 어르신의 한마디는 이후 물속에 “잠든 삶, 물 위에 피어난 기록”을 작업 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되었다.

댐 건설로 공동체는 단절되고, 수많은 묘가 새로운 땅으로 옮겨졌지만, 연고가 없던 묘들은 그대로 물속에 방치되었다. 이는 단순히 ‘흔적’의 사라짐이 아니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공동체는 파편화되었고, 그들이 쌓아 올렸던 문화와 역사 역시 희미해졌다. 장소가 사라지니, 이야기도 잊혀만 갔다.

사진 작업을 이어가던 중 한 어르신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분의 유언에 따라 진행된 상여가 나가는 전통 장례를 촬영하며, 수몰민들이 잃은 것은 단지 집과 땅이 아니라, 그 땅에서 함께 쌓아 올렸던 문화와 삶의 의미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2019년, 신수만 어르신께서도 세상을 떠나셨다. 생전에 “사진이 밥이 되느냐?”라고 던지신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기록한 사진과 이야기가 어르신의 삶과 기억을 잇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

물속에서 드러난 돌무더기와 집터의 흔적들은 그들의 삶의 자취를 짐작하게 한다. 그 속에 담긴 뿌리 깊은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는다. 격변의 시간 속에서도 꿋꿋이 남은 흔적들은 우리에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수몰민들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넘어선 깊은 울림이 있다. 이 사진 작업이 그들의 삶을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이어주는 작은 다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