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밤골에서
작가노트
서울 관악산 산자락 끝, 한때 밤나무가 무성했다던 그곳엔 ‘밤골’이라는 이름만이 박제된 채 남겨져 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아현동과 난곡동의 거센 개발 바람에 밀려 더 이상 갈 곳 없던 이들이 하나둘 모여 자리를 잡은 곳. 45년 전,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였던 이 가파른 산동네는 그렇게 118세대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난 16년 동안 이 마을의 사계절을 기록했습니다.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아 매년 10월이면 골목마다 연탄이 쌓이고, 매캐한 연탄 연기가 마을의 아침을 깨우던 풍경들. 비록 무허가 번호판이 붙은 낡은 집이었지만, 그 안에서 피어오른 정(情)만큼은 그 어떤 고층 아파트보다 견고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합니다. “부부로 50년 살기도 힘든데, 이웃으로 40년을 넘게 살았으니 형제보다 낫지.”
김공순 회장님은 35살 무작정 상경해 9년 만에 마련한 1850만 원짜리 무허가 집에서 일곱 식구를 키워냈습니다. 경로당 회원들을 위해 사비까지 털어가며 매달 쌀 7포대를 지어내던 그분의 손길은 밤골의 어머니 그 자체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얼음물 한 잔을 건네며 수줍게 웃으시던 박영숙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시어머니 때부터 이어온 40년의 밤골 생활. 비록 아저씨는 먼저 세상을 떠나셨지만, 딸은 평창으로 시집보내고 두 아들과 함께 꿋꿋이 자리를 지키던 그 미소는 척박한 땅에 핀 들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81세의 애영해 아버님은 밤골의 산증인이셨습니다. 서울대학교도 없던 시절, 이곳을 ‘마차길’이라 부르며 영등포 장터에 땔감을 팔러 다니던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면 마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개발하면 집 한 칸은 주지 않겠어?”라는 소박한 희망으로 20년을 기다려온 그분에게 개발은 희망이자 동시에 삶의 터전을 잃는 슬픔이었습니다.
2023년, 밤골의 시계는 잠시 멈췄습니다. 주민들은 정든 이웃들과 뿔뿔이 흩어져 임대아파트로 이주했고, 낡은 집들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이제 사람 대신 숲이 들어서는 생태공원이 조성될 예정입니다. 삼겹살 한 점에 지난 세월의 고단함을 털어내던 주민들의 웃음소리는 이제 내 사진 속에만 머물게 되었습니다.
비록 집은 사라지고 지도는 바뀔지라도, 16년간 내가 담아온 이 기록들이 훗날 밤골로 돌아올 이들에게, 혹은 이곳을 기억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의 집’이 되어줄 것을 말입니다. 이 전시는 단순히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뜨겁게 서로를 보듬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집은 허물어져도, 우리가 나눈 온기는 이곳에 남겨두었습니다. 밤골 마을에 다시 새로운 온기가 입혀질 그날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