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기점
작가노트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섬 및 주변해역으로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가 명시하는 이 간결한 문장은 우리 삶의 터전이 단순한 육지를 넘어 저 멀리 외로운 섬과 바다의 연결체임을 선언합니다. 우리 바다 위에는 3,390개의 섬이 점처럼 흩어져 있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23개의 섬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영해 범위를 결정짓는 기준점이자, 주권의 시작점인 ‘영해기점’입니다.
이 23개의 섬을 찾아 나서는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가거도, 소훌국도, 홍도, 고서, 그리고 간여암을 렌즈에 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도 위의 작은 점이거나 이름조차 생소한 무인도일지 모르나, 그곳들은 거친 파도와 해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대한민국의 주권이 시작되는 ‘첫 번째 경계’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척박한 영해기점의 섬을 지키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름 모를 새들의 날갯짓과, 억겁의 세월 동안 집요한 파도에 맞서 싸워온 굳건한 바위들만이 고독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 해양 영토의 실체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서의 적막함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국가라는 거대한 생명력의 가장 뜨거운 박동을 느꼈습니다.
나의 작업은 단순히 섬의 비경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록을 통한 기억’의 과정입니다. 도서·벽지 교육진흥법부터 서해5도 지원 특별법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법률로써 섬 주민의 삶과 복지를 보듬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섬이 곧 영토이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곧 국가의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섬의 온기와, 오로지 영해기점 표지석만이 자리를 지키는 무인도서의 고독함은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영토의 소중함’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수렴됩니다.
거친 해무 속에서 위용을 드러낸 가거도와 홍도의 날카로운 침묵은,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리는 평화의 경계가 얼마나 치열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대변합니다.
나의 소망은 23곳의 영해기점 전부를 기록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 섬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깨닫고, 보이지 않는 해상 경계선 너머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진들이 우리 영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일깨우는 작은 밀알이 되기를 꿈꿔 봅니다. 저 멀리 홀로 파도를 견디는 바위가 외롭지 않도록,”지도 위의 작은 점이라 불리는 섬들이 실은 우리 국토를 지탱하는 가장 거대한 뿌리였음을, 기록하고자 한다.“
*한국섬 진흥원 자료인용이며 섬의 수는 변동이 있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