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이디, 신선(神仙)의 땅
작가노트
계획에 없던 발걸음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기록하던 중,‘삭’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라오스 방비엥. 그곳에서 마주한 첫 공기는 낯설고도 포근했습니다. 유료 화장실의 불편함과 낡은 푸세식 시설에 당황하기도 잠시, 나는 그곳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네 1970년대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 위로 피어나던 아이들의 무해한 미소, 처음 본 이방인에게도 오래된 친구처럼 ‘사바이디’라고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우리가 도시를 세우고 고속도로를 닦느라 잃어버렸던 ‘순수’라는 이름의 고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3년 뒤 다시 찾은 라오스는 여전히 친근했습니다. 12시간 동안 버스에 몸바쳐 흔들리며 다다른 루앙프루방은 식민지 시절의 유럽풍 건물들이 묘한 이국적 정취를 자아냈지만, 그 골목을 채운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밝은 온기였습니다. 험한 길을 돌아온 고단함은 그들의 미소 한 자락에 씻겨 내려갔고, 나는 그곳에서 마치 어릴 적 뛰놀던 시골 마을에 돌아온 듯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라오스는 나에게 사진가의 피사체이기 이전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그리고 2025년, 다시 찾은 방비엥에서 나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중국 자본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거대한 고속도로가 뚫리고, GTX급 고속철도가 산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5시간이 걸리던 구불구불한 길은 1시간 만에 주파하는 ‘속도’의 길로 바뀌었지만, 비례해서 소중한 것들은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에서는 예전의 호기심 어린 순수함이 흐려졌고, 상인들의 웃음 뒤엔 낯선 장사속이 서성였습니다. ‘신선의 나라’라 불리던 그 고요하고 투명했던 공기가 개발의 먼지 속에 퇴색되어 가는 모습은 마치 나의 소중한 추억 한 페이지가 강제로 찢겨 나가는 듯한 아픔이었습니다.
이제 나의 시선은 남쪽의 ‘팍세’로 향합니다. 아직 고속도로와 철도가 닿지 않았다는 그곳에, 내가 처음 방비엥에서 느꼈던 그 떨림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전시는 지난 10년 동안 내가 사랑했던 라오스에 대한 고백이자, 급변하는 시대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애잔한 기록입니다.
“문명의 속도가 닿지 못한 채 여전히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을 그곳을 향해, 나는 다시 한번 고독하고도 따뜻한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